
목요일 오후 2시 30분. 영업기회 파이프라인이 마감되고 자료가 올라간다. 예전에는 금요일 회의 전날,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나가던 자료다. 그때 회의실에서 자료를 다 읽고 들어온 사람은 발표자 한 명뿐이었다.
지금은 회의가 월요일이다. 임원과 팀장들은 이틀 동안 그 자료를 들여다보고, 모르는 것은 자료 뒤에 붙은 챗봇에 묻고 들어온다. 이 장치를 만든 김지형 과장은 이 변화를 두고 「내 시간을 줄인 것」이 아니라 「회사가 빨라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0년 동안 제안서를 쓰고, 본부 손익을 맞추고, 투자와 수주 심의에서 검토 의견을 쓰고, 회사의 한 해 계획을 짰다. 그 일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왜」라는 질문이었다. 이 규정은 왜 생겼는지, 이 비용은 왜 여기서 나오는지, 이 사업은 왜 해야 하는지. 그는 숫자로 실마리를 잡고, 사업의 사정과 규정의 취지를 함께 살펴 실행할 방법을 찾았다.

경영기획의 한 달
경영기획팀의 한 달은 어떻게 돌아갑니까.
월초에는 회의 일정부터 잡아요. 경영진 일정을 보고, 주마다 주제가 있거든요. 안전, 위험, 성과, 신사업, 경영 최적화. 관련 부서와 「이날 하셔야 됩니다」 하고 협의해서 양식을 내려보내요. 매주 목요일 2시 반에는 영업기회 파이프라인을 마감하고요.
둘째 주쯤이면 결산이에요. 재무 결산이 끝나면 공통비, 판관비를 본부와 사업에 나눠요. 예를 들어 이번 달 간접비가 20억이 나갔으면 나눈 금액도 20억이 맞아야 하고, 튀는 숫자가 있으면 왜 튀는지 설명할 수 있게 배부 전후를 다 적어 둬요. 결산은 AI한테 맡길 수가 없어요. 제가 확인해야 할 게 많거든요.
결산이 끝나면 2~3일 안에 성과분석과 연간 손익전망을 내요. 셋째, 넷째 주에는 리스크 점검 회의,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주간회의. 그 사이사이 대표님 지시 업무가 들어오고요.
연초 실적은 작아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월, 2월 매출은 둘을 합쳐도 연간 매출의 3%가 안 될 때가 있어요. 아주 작은 규모라서 「아직 의미 없는 숫자」라고 결론 내리기 쉽죠. 그런데 최근 5년 치 1월 매출과 연간 매출을 놓고 상관분석을 해 보면 상관계수가 0.99가 나와요. 2월 누계로 보면 B2B 사업이 강한 해와 약한 해가 갈려서 둘을 나눠 봤는데, 각각 0.999와 0.998이었어요. B2B 사업은 수주에서 매출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하반기에 몰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 분석으로 「제 말이 맞다」고 우기려던 건 아니에요. 경영진이 1월, 2월에 「자, 슬슬 열심히 해 봅시다」 하고 느슨하게 가기보다,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쌓아 가야 한다」고 힘 있게 말씀하실 수 있게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어 드린 거예요.
상반기 매출은 보통 연간의 3분의 1이 안 돼요. 그러니 상반기 실적만 보면 안 되고, 하반기에 따는 사업 중에 연내 매출이 되는 게 뭔지를 갈라서 보여 드려야 해요. 큰 공사는 실행계획으로 남은 기간을 돌려 보고요. 매출에서 고정비까지 다 내려서 「올해 영업이익은 여기서 끝납니다」까지 말해야 그게 전망이에요.
매출을 줄이자고 한 이유
가장 무거웠던 일을 꼽는다면.
2024년 가을부터 석 달, 대표 직속 구조혁신 TF에서 숫자를 맡았어요. 매출은 커졌는데 이익이 들쭉날쭉했어요. 에너지·환경 쪽에 사람을 많이 뽑은 뒤로 2023년, 2024년 손실이 쌓였고, 태양광 고객이 개인사업자로 넓어지면서 돈을 못 받을 위험도 커졌어요. 사람을 줄이는 게 걸린 결정이라 비용 몇 개 줄이는 걸로는 답이 안 됐죠.
최근 3년 프로젝트를 전부 뒤져서, 공공과 태양광 사업에서 실제로 하자, 환경 사고, 못 받은 채권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았어요. 그리고 안을 다섯 개 만들었어요. 무선으로 전환, B2B로 전환, 전면 철수, 반은 철수하고 반은 전환, 돈 되는 사업만 남기고 나머지 인력은 전환하거나 희망퇴직. 안마다 전환 비용, 석 달 동안 매출이 없는 기간, 인당 생산성으로 거꾸로 계산한 매출을 넣어서 영업이익을 견줬어요.

수익성이 가장 좋은 안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선 전환안이요. 정리하려던 사업의 인력을 무선 사업으로 직무 전환시키는 안이었어요. 그런데 버렸어요. 전환하면 우선 전환 비용이 들고, 사람들이 잘 정착해서 일을 잘 해낸다고 해도 무선 사업은 사람을 넣는 만큼 수익이 나는 모델이 아니었거든요. 검토 의견서에 그 한계를 그대로 적었어요.
결과적으로 매출은 15% 가까이 줄었어요.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개선이 있었어요. 에너지·환경사업만 놓고 전년과 견주면 인당 생산성이 2.5배, 건당 수주가 3.5배, 수익성이 1.6배가 됐어요. 다만 인당 생산성이 오른 건 사람이 줄어든 효과가 커요. 개편하면 당연히 나오는 숫자예요. 그래서 개편 뒤 본부 평가에 인당 생산성을 넣어서, 그 위에서 본부가 스스로 더 끌어올리게 했어요.
개편은 광역본부 여섯 개를 없애는 일이었는데, 직원 설명회를 거쳐서 큰 갈등 없이 끝났어요. 개편 뒤에는 희망퇴직 비용을 사업본부 실적에서 따로 떼어서, 본부 숫자가 그 비용 때문에 흐려지지 않게 했고요.
사람에 대한 판단을 숫자로 했다는 말입니까.
그 바탕이 1년 전에 고친 타임시트였어요. 타임시트는 회사의 계륵이었거든요. 다들 입력을 안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들여다보니 일한 만큼 인건비를 프로젝트 원가에 넣을 수 없는 구조가 문제였어요. 인건비 예산이 넉넉한 현장은 오히려 성실하게 입력하고 있었고요. 원가를 다 채운 사업의 추가 투입분은 관리회계에서만 간접비로 잡히게 바꿨어요. 인사팀과 재무팀이 걱정한 지점이 서로 달라서, 부서마다 우려를 따로 풀어 가며 입력 방식과 진행률 상한을 정했어요. 그렇게 고쳐 놓으니 누가 어디에 얼마나 일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게 1년 뒤 개편에서 근거가 됐어요.
사람을 넣는 만큼
수익이 나는 사업이 아니었어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
투자나 수주를 멈춰 세운 적이 있습니까.
회사가 전액을 대는 태양광 발전 사업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통신 인프라를 시공하는 회사라 투자 자체가 드물고, 발전 사업은 처음이었어요. 전례가 없으니 운영하면서 드는 돈, 달마다 들어오고 나가는 돈, 모듈 수선비부터 다시 셌어요. 다른 회사 사고 사례, 다른 지역 운영 수익도 모아서 실무자와 몇 번을 주고받았고요.

회사가 요구하는 수익률에 못 미쳤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도 너무 오래 걸렸어요. 홍수 피해가 잦은 땅이라 기후 리스크도 있었고요.
숫자가 모자라도 전략적인 가치가 있으면 다시 볼 수 있어요. 이 사업이 전략적 투자가 되려면 모회사의 RE100 이행에 기여해야 했어요. 그러려면 우리가 발전한 전기를 모회사가 사서 직접 쓰는 최종 사용자가 돼야 하는데, 이 모델은 그렇지 않았어요. 발전은 우리가 하고, 모회사는 중개만 하고, 전기를 실제로 쓰는 건 다른 기업이었어요. RE100 관점에서 봐도 전략적 가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정량, 정성 둘 다 부적정이라고 썼고, 위원회가 받아들였어요.
반대로 「하자」고 한 경우는요.
대형 데이터센터 신축이요. 수익성은 기준에 조금 못 미쳤고, 공기를 늘릴 수 없는 조건에 원가 상승분을 넘길 수 없는 조항까지 있었어요. 검토보고서에 「공기 지연은 반드시 발생한다」고 썼어요. 1~2개월 늦어진다고 보고 지체상금을 계산해서 예비비와 견줬고, 넘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같이 적었어요.

그래도 AI 때문에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지는 때였어요. 우리 마지막 데이터센터 신축이 4년 전이라 그사이 사람도 빠져나가 있었고요. 이 사업으로 신축 실적과 수행 역량을 다시 쌓는 게 회사의 중장기 경쟁력에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검토 의견을 이렇게 냈어요. 과거 경험으로 보면 공기 지연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지연을 처음부터 전제로 두고 비용을 따져 보고, 그 위에서 우리 회사의 중장기 관점으로 이 사업의 가치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수주했어요. 원가가 오르면 그 부담을 파트너사와 나누는 방안을 세우고, 발주처에 증액을 청구할 근거를 계속 쌓는 쪽으로 대응도 짰고요.
지금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발주처와 공기 연장 협의를 끌어내서 기한을 두 달 늘렸어요. 공기 지연 문제는 이제 거의 풀렸다고 봐요. 다만 미국과 이란의 전쟁 여파로 알루미늄 같은 내장재 값이 오른 부분은 아직 정산이 남아 있어서, 손익은 계속 지켜봐야 해요.
규정끼리 부딪힐 때는 어떻게 합니까.
한 리모델링 사업에서 본부가 큰 규모의 예비비를 본부 결재로 쓰려고 했어요. 심의 규정으로는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리스크 규정으로는 대표님께 보고할 일이었어요.
그럴 땐 규정을 왜 만들었는지부터 봐요. 예비비를 팀장 전결로 둔 건 사업을 빨리 하라는 뜻이고, 심의 때 예비비까지는 대표님이 승인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 빈틈을 메우려고 리스크 매뉴얼의 손실 기준을 일부러 보수적으로 바꿔 둔 거고요. 둘이 겹치면 보수적으로 가야 해요. 회사는 그 돈이 나간다는 걸 모른 채 손익전망도, 단체교섭도, 투자계획도 세우고 있었으니까요.
시뮬레이션으로 직접 보여 드렸어요. 예를 들어 진행률이 90%였다면 예비비를 올리는 순간 85%로 내려가고, 그만큼 이번 달 영업손실로 돌아온다고요. 예비비가 완충 역할을 못 하게 된다는 본부 말도 일리가 있어서, 필요한 사업만 예비비를 비용계획에 올리는 게 맞다고 봤어요. 예비비는 결국 집행됐고, 미리 보고가 없었던 점을 대표님이 강하게 지적하셨어요.
그럴 땐 규정을
왜 만들었는지부터 봐요.

기준은 단순하게, 설명은 끝까지
비용 배부를 두고 본부마다 불만이 많았을 텐데요. 공통비 나누는 기준도 바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계정마다 기준이 달랐어요. 매출로만 나누는 것도 있고, 인건비와 매출 반반도 있고. 그런데 우리 회사는 매출이 달마다 들쭉날쭉해요. 매출로 나누면 매출 적은 달에 특정 본부로 비용이 쏠려서 손익이 왜곡돼요.
2024년에 인건비 하나로 통일했어요. 사람 많이 쓰는 조직이 고정비도 그만큼 지고, 매출과 이익도 그만큼 내야 한다. 그때는 목표도 인력과 고정비로 세우던 때라, 목표 세우는 기준과 비용 나누는 기준을 같은 줄에 맞춘 거예요. 로직이 단순하니까 새 경영진이 와도 설명이 돼요. 반대한 본부는 없었어요.
그래도 이의는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허들레이트가 높다는 얘기는 해마다 나와요. 고정비는 정해져 있으니까 비율을 바꿀 수 있는 건 매출과 사업비뿐이거든요. 「계획 세울 때는 질 좋은 사업만 하겠다고 매출 목표를 낮춰 놓고, 지금은 박리다매를 하고 싶다고 하시면 계획과 안 맞습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원장까지 내려가서 지난달 몇 %, 이번 달 몇 %를 나란히 보여 드리고요. 새로 만든 로직에서 난 오류는 바로 인정해요.

AI로 바뀐 건 내 시간이 아니라 회의였다
요즘 AI로 일하는 방식을 많이 바꿨다고요.
파이프라인 마감은 일주일에 8시간쯤, 결산 뒤 분석은 한 달에 15시간 넘게 줄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시간을 줄인 거잖아요. 경영진 입장에선 제가 어떻게 돌리든 상관없고, 제때 볼 만한 자료가 나오면 되는 거죠.
진짜 달라진 건 회의예요. 예전에는 금요일 회의 자료가 목요일 퇴근 무렵에 나가서, 다 읽고 들어오는 사람은 발표자뿐이었어요. 지금은 목요일 2시 반에 자동으로 올라가고 회의가 월요일이니까, 임원이랑 팀장들이 이틀 동안 하나하나 보고 와요. 결산 대시보드도 결산 끝나는 날 올라가요. 매출, 변동비, 공헌이익, 고정비, 영업이익 순으로 보여 주고, 적자가 매출이 모자라서인지 원가가 올라서인지까지 나와요. 뒤에는 질문을 받는 챗봇을 붙여 놨어요. 모르는 건 거기 물어보고 오시니까 회의가 빨라졌어요. 지금 40명 정도 써요.
전사로 넓히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사무실에 작은 PC 한 대를 24시간 켜 두고 돌리는 업무용이라서요. 전사 서비스가 되면 서버로 봐야 하고, 서버 보안 기준을 맞추려면 인프라를 더 갖춰야 해요. 그건 내년 투자 계획으로 제대로 가야 할 일이에요. 그룹 AI 지침도 곧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한 건 아니에요. 전사 CRM을 한 번에 깔려다 실패했어요. 그때 배운 게, 업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자기 일에 작게 붙일 때 AI가 제일 쓸모 있다는 거예요. 사규 검색, 산업동향 스크랩, 공공입찰 알림도 그렇게 하나씩 만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 AI 실습 세미나를 열어요.
세미나에서는 무슨 얘기를 가장 많이 합니까.
사람 수준이 올라가야 AI 수준도 올라간다는 얘기요.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어떤 결론을 내고 싶은지, 어떤 논리로 끌고 가고 싶은지가 분명하고 그 논리가 탄탄할수록, 그걸 쥐고 AI를 리딩하면서 일을 시킬수록 결과가 확실히 좋아져요. 그래서 저는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요. 평소에도 일의 방향이나 아이디어, 전략을 계속 고민하는데, 그게 AI를 쓸 때 실제로 도움이 많이 돼요.
생각의 주권은 제가 쥐고, 일을 시키거나 반복하는 건 최대한 AI 도움을 받아요. 숫자랑 일의 맥락, 생각하는 방법에서 주도권을 놓기 시작하면 내가 무슨 결론을 내고 싶은지 길을 잃거든요. 그게 지금 일하는 방식으로도 맞고, 회사에도 개인에게도 길게 보면 도움이 돼요.
회사 전략에도 AI 이야기가 들어갔습니다.
올해 9월에 '27년 전략방향이 「AX 인프라 전문 기업」으로 정해졌어요. 5개월 동안 경영진께 말씀드린 논리예요. 이번 AI 바람은 새 산업이 오래된 산업을 끌고 가는 구조다. AI 플랫폼이 돌아가려면 전력, 통신 같은 인프라가 먼저 깔려야 하고, 그걸 하는 회사가 우리다. 처음엔 그림은 그렸는데,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조직에 모이지 않았어요. 전략은 좋은 그림만으로는 안 되고,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같이 있어야 된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그래서 경영진께 중장기 지향점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요. 우리 회사가 그룹의 AX, 통신, 부동산, 미디어, 에너지 인프라가 모두 거쳐 가는 허브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경영진을 설득했고, 지금은 그 방향으로 '27년을 준비하고 있어요.
생각의 주권은 제가 쥐고,
반복하는 일은 AI에게 맡겨요.
구호가 아니라 약속으로
2025년에 「기본과 원칙」 캠페인을 맡았다고요.
몇 년째 중대 리스크가 끊이지 않으니까, 새로 오신 대표님이 「기본과 원칙」을 세우고 싶어 하셨어요. 3월 「기본과 원칙 확립의 달」부터 연말까지 총괄 기획을 맡았어요. 처음에 스스로 물은 건 「그래서 우리가 뭘 바로잡아야 하지」였어요. 레이 달리오의 『원칙』, 론 카루치의 『정직한 조직』을 읽으면서 납득한 게 있어요. 기본과 원칙 없는 성장은 결국 그 빈자리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위에서 외치는 구호는 안 지켜진다. 구성원이 스스로 만든 약속이어야 몸에 배요.

그래서 위에서 선포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버렸어요. 산업안전, 리스크, 공정품질, 컴플라이언스, 업무 마인드셋. 다섯 분야에서 하나씩, 5계명을 주니어 직원들과 밑에서부터 뽑았어요. 워크숍을 두 번 하고 임직원 공동 선언식을 열었고, 참석한 사람들을 사내 커뮤니티로 묶어서 1년 내내 이어 갔어요.
C레벨 공동선언 영상은 제가 직접 기획하고 편집했고, 사내 유튜브 라이브도 그때 처음 송출해 봤어요. 그다음엔 펜, 스티커, 노래, AI로 만든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서 퍼뜨렸어요. 5계명은 그해 내내 회의 때마다 낭독했고, 연말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 행사까지 이어 갔어요.
결국 바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을 만큼 정직이 당연하게 몸에 배는 거요.
정직하게 일한 사례를 하나 꼽는다면요.
그 질문을 받으면 사례 하나를 고르기가 오히려 어려워요. 저한테 정직은 어떤 순간에 꺼내 쓰는 게 아니라, 일을 시작할 때부터 깔려 있는 전제거든요. 누가 언제까지 하라고 하면 그 근거가 사규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보는 눈이 없을 때도 평가와 배분의 기준을 바꾸지 않으려고 해요. 그렇다고 원칙만 들이대지는 않아요. 해결책 없는 지적은 의미가 없거든요. 지적할 때는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같이 들고 가요.
리스크 관리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습니까.
솔직히 한동안은 저조차 리스크 관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회사가 왜 이 일을 하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납득하고 나서야 보이더라고요. 그때 과제를 「나쁜 소식이 벌받지 않고 바로 공유되게 만드는 것」으로 잡았어요.
접수 채널을 늘리고, 협력사 직원도 QR로 신고할 수 있게 했더니 2022년 8건이던 접수가 2024년에는 19건이 됐어요. 사고가 늘어난 게 아니라, 숨어 있던 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평가도 마찬가지예요. 방향에 맞고 정직하게 드러낸 실패는 자산으로, 기본을 어기거나 숨긴 실패는 책임으로 봐야 해요. 실패를 수업료라며 흘려보내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거든요.
정직은
일의 전제예요.

사업부서와 같은 말로 이야기하려면
경영기획을 하는데 산업 공부까지 필요합니까.
회사가 돈을 버는 분야를 모르면 이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사업부서와 대화가 동등하게 안 되거든요. 정보가 한쪽으로만 흐르고, 관리부서는 규정이나 프로세스만 외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관심 있는 분야보다, 회사가 수익을 내는 분야에 관심을 더 두려고 해요. 데이터센터라면 냉각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태양광이라면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같은 것들이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라 기술을 이해하고 그걸 문서로 풀어내는 데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공부가 실제로 쓰인 적이 있습니까.
현장에 데이터센터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모아 둔 자료를 AI로 엮어서 도구를 하나 만들었어요. 고객이 원하는 조건을 예, 아니요로 체크해 나가면 코로케이션으로 갈지, 직접 지을지, GPUaaS로 갈지 몇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거기에 맞춰 대략 얼마를 투자해야 하고 회수 기간은 얼마쯤 봐야 하는지까지 보여 줘요. 추정치지만 현장에서 조금은 힘이 됐을 거라고 봐요.
그룹에서 데이터센터 얘기가 나오기 전부터, 우리가 그룹 안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내부에 계속 제안했어요. 미리 공부해 둔 게 있으니까 그룹 발표가 나와도 바로 대응할 수 있어요. 최근 AI 데이터센터 관련 언론사 인터뷰에 회신할 때도 사업부서 도움 거의 없이 제가 다 써서 보냈어요.
판단은 어떻게 익혔습니까.
사례로 쌓였어요. 예산과 손익관리, 관리회계를 맡으면서 SAP CO 모듈까지 운영하던 두 분이 한꺼번에 그만두셨어요. 보름 만에 그 일을 넘겨받았는데, 그 뒤로도 모르는 게 정말 많았어요. 예산을 짜고 통제하는 일부터 손익 마감, 공통비 배부까지 한 바퀴씩 직접 해 보면서 익혔어요. 배부 로직을 거꾸로 따라가는 데만 1년쯤 걸렸고요. 그래서 제가 아는 건 케이스 스터디처럼 쌓여 있고, 일이 생기면 그 사례로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경영계획부터 한 바퀴를 직접 겪어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잡혀요.
사건 하나를 놓고도 여러 각도로 봐야 해요. 이걸 하면 어디에 어떤 파급이 갈지, 영향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그렇게 판단해서 운영할 때, 누가 물어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알고 있으려고 해요.
뜻대로 안 된 일도 있었습니까.
있어요. 타임시트를 고치기 전에 산출물 관리 시스템을 만든 적이 있어요. 프로젝트 산출물이 사람마다 흩어져 있는 게 문제라고 보고, 시스템에 목록을 만들어 쌓게 했어요. 그런데 현업에서는 같은 걸 두 번 입력하는 일만 늘었어요. 전자결재와 연결해서 그 부담을 줄였더니, 이번엔 문서가 쌓이기만 하고 아무도 찾지 않는 시스템이 됐어요.
올리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결국 사람인데, 제 의도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은 탓이었어요. 타임시트는 그 교훈에서 다시 설계했어요. 사람들이 왜 입력을 안 하는지부터 들여다본 것도 그래서예요.
제도를 바꾸자고 했다가 못 바꾼 적도 있습니까.
2025년 성과평가 때예요. 전년도 본부별 성과급 차이가 크게 났는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곳이 데이터센터를 맡은 본부였어요. 그런데 그 본부는 자기 미션을 제일 잘 해낸 조직이었어요. 대형 사업을 따서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어질 매출과 수행 역량을 쌓는 게 그 본부의 미션이었거든요. 공기가 긴 대형 프로젝트를 리스크를 일찍 공유해 가며 안정적으로 끌고 갔는데, 모든 본부에 똑같은 단기 수주 잣대를 대니까 잘한 일이 가려진 거예요.
미션이 다르면 목표도 평가도 달라야 한다고 제언했어요. 하지만 본부 간 형평성과 달성 난이도를 맞춰야 한다는 논리에 막혀서 그해에는 바꾸지 못했어요. 미션별 차등 평가는 다음 제도 개선 과제로 남겨 뒀어요.

10년 동안 그가 쓴 문서의 이름은 계속 바뀌었다. 제안서, 손익분석, 심의 의견서, 경영계획, 리스크 보고서. 그러나 문서마다 먼저 붙든 질문은 같았다. 왜 그런가.
그는 규정을 들이밀기 전에 규정이 생긴 이유를 보고, 지적하기 전에 풀 방법을 같이 들고 가고, 사업부서와 마주 앉기 전에 그 사업을 공부한다. AI에게 일을 맡기면서도 생각의 주권만큼은 놓지 않는다. 그에게 숫자는 정확하게 일하기 위한 도구다. 경영기획은 그 도구로 사업의 사정을 이해하고, 원칙을 지키면서 실행할 방법을 만드는 일이다.